'괴물'이 다시 기지개를 켰다. 류현진(37)이 한화 이글스의 가을 야구를 위해 불꽃을 태운다.
11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정리한 류현진은 큰 기대를 모았다. 개막 후 3경기 연속 승리를 따내진 못했지만, 6월까지 꾸준하게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팀이 부진해 5승에 머물렀지만 부상 없이 한화 선발진의 기둥 역할을 했다.
여름 들어 흔들리긴 했지만, '류현진은 류현진'이었다. 지난 13일 LG 트윈스전에서 5이닝 2안타 2볼넷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그리고 18일 SSG 랜더스전에선 6과 3분의 1이닝 1볼넷 8탈삼진 1실점하고 승리투수가 됐다. 시즌 7승째를 거두면서 시즌 평균자책점도 3점대(3.97)로 낮췄다. 국내 투수 중에선 원태인(삼성)·양현종(KIA)·손주영(LG)에 이은 4위다. 나흘 휴식 후 등판이었지만 거뜬한 모습이었다.
경기 뒤 만난 류현진은 "전체적으로 제구가 잘 됐고, 구속도 나왔다. 오늘은 날도 시원해서 옷을 한 번 밖에 안 갈아입었다. 타자들이 점수도 많이 내줘 쉴 시간도 충분했다"고 말했다. 팀내 최고령 투수지만 류현진은 가장 많은 23번 선발등판했다. 그는 "아직까지 힘들진 않다. 이제는 날씨도 선선해져서 좋아질 것 같다"고 씩 웃었다.
18일 인천 SSG전에서 승리를 따낸 한화 투수 류현진. 사진 한화 이글스
류현진은 올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메이저리그와 한국행 사이에서 고민하다 돌아왔고, 자동 볼 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ABS) 적응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최다 실점(9실점)과 최다 피안타(12개)를 허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완숙해진 투구로 이겨냈다. 류현진은 "초반에 ABS 때문에 안 좋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모든 선수에게 같은 조건인데, 그걸 내려놓는 순간 나아진 것 같다"고 했다. 양상문 한화 투수코치는 "투구 메커니즘적으로 보면 모든 게 좋다. 승운이 조금 따르지 않았을 뿐, 내가 해줄 조언이 없다. 워낙 알아서 잘 한다"고 했다.
류현진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해인 2012시즌 9승(9패)을 기록했다. 데뷔 이후 이어오던 6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 기록이 깨졌다. 그리고 13년 만에 KBO리그에서 10승을 올릴 기회가 찾아왔다. 류현진은 "아니다. 10승보다는 평균자책점이 중요하다. 10승을 하면 좋다. 하지만 미국 가기 전에 연속 기록이 끊어졌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12년 전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부분은 '가족'이다. 과거엔 아버지 류재천씨와 어머니 박승순씨가 경기장을 자주 찾았다. 마운드에선 듬직하지만, 부모 앞에선 "엄마, 아빠"라면서 막내아들 같은 모습을 보였던 그다.
하지만 이제는 어엿한 가장이 됐다. 최근엔 아내 배지현씨가 4살 된 딸 혜성이를 데리고 관중석에서 자주 지켜본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에도 혜성이가 '아빠'하고 달려와 류현진의 품에 안겼고, 그 모습을 아내와 아버지가 지켜봤다. 딸을 안아든 류현진의 표정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한화 이글스 류현진. 연합뉴스
그는 "가장 먼저 (가족들이)어디 있는지를 찾는다. 인사를 한 뒤, 경기 중에는 집중하기 위해 보지 않는다. 마운드를 내려올 때만 다시 본다"고 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딸 혜성이는 아빠의 투구에 환호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류현진은 "요즘은 야구를 알아서 재밌어 하는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시즌 중반까지 어려움을 겪었던 한화지만 최근 분위기가 좋다. 올스타 휴식기 전후로 7연승을 달렸고, 최근 3연승을 이어갔다. 7위지만 5위 SSG 랜더스와는 2.5경기 차까지 좁혔다. 류현진으로선 한화 유니폼을 입고 17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류현진은 "열심히 순위표를 보고 있다, 한 경기, 한 경기마다 확인한다"며 "우리는 쫓아가는 입장이다. 다른 팀 신경쓰지 않고, 우리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 좁혀진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